인천시 남동구 구월1동 1212-10 무궁화빌라 9동 201호 / 21세/ 여 / 김꽃봄 (한국인)
-인천의 색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사실 대학을 인천 아닌 곳에서 다니기까지 내 고향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냥 서울과 가까이 있는 항구도시 정도로만 생각해봤을까... . 그러다가 전국 각지에서 모여온 친구들 속에서 인천 출신 친구들의 특성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유난히 털털하고 솔직 담백한 모습들을 보이는 우리 반 인천 친구들. 인천은 어떤 곳일까 하는 생각 속에 이주영 선생님을 따라 인천 워킹을 하게 되었다.
동인천역 2시. 한국인은 선생님과 나까지 넷, 외국인은 두 분 오셨다. 다양한 문화와 환경에서 자란 분들이 오늘 여기 인천에서 함께 모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이동한 곳은 배다리에 위치한 스페이스 빔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배다리를 자주 드나들며 헌책도 사고 일반 고등학교를 다닐 때 스페이스 빔에서 열렸던 한 전시를 구경하며 예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었던 곳이었는데 대학졸업을 앞두고 이렇게 다시 와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사무실이 있는 2층에 올라가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여러 프로젝트라든지, 국가의 개발 사업을 반대하며 함께 펼치고 있는 활동과 에코파크라는 식물 생태계 보존 구역을 둘러보며 낮은 지붕이 많은 이곳을 끝까지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의 여부는 우리 인천지역 사람들의 손에 달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이동한 곳은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인천 학생교육문화회관을 지날 때는 고등학교 때 연극부 친구들과 공연을 보러왔던 기억이 났다. 어쨌든 그 오르막길을 오르며 인천 아트 플랫폼의 두 작가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건축에 관심이 많으신 한 분은 올라가는 내내 건물의 형태며 양식을 보며 사진도 찍으시고 생각을 말씀하시기도 했다. 이 오르막길의 집들은 대개 주변부에 비해 낮기도 했지만 색감과 양식이 오히려 빛이 바래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 지역 사람들 또한 그것을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하여 더욱 소중히 안고 가는 듯이 보였다. 이후에 이주영 선생님, 다른 작가 한 분과 다시 이 길을 오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에는 에코파크 앞에 있는 다세대 주택에서 가져온 한국인의 정서가 공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화제를 가져와 이 오르막길에서도 건물 앞에 놓인 화분을 통해 화분은 굉장히 유동적인 소재이기 때문에 이것 또한 자신의 영역을 표현할 때 중요하다 라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국인이기에 가질 수 있는 정서가 있고 그들의 정서가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것. 크게 보면 인천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온 것도 어떠한 정서가 중심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어쨌든 오르막길은 거리가 긴만큼 옆의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에 최적이었나 보다. 길을 다 오르고 커다란 돌로 쌓아올린 문이 나왔다. 홍예문이었다. 당시 많은 노동자들이 이 문을 쌓아올리다가 노역에 지쳐 죽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이 목숨을 바쳐 세운 문을 내가 이렇게 금방 지나치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자유공원으로 조금 더 가는 길에 연안부두이며 인천 아트 플랫폼의 전경, 그러니까 중구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가 있었다. (사실 그 곳이 중구인 것도 이번에 워킹을 하며 알게 된 사실이다. 이렇듯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제 고향에 대해서도 잘 모르나 보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이 때 함께 워킹을 했던 분들이 인천은 어떻다 라는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 ‘색’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셨다는 것이다. ‘인천의 색은 회색 하늘같다’라는 식. 인천의 색이 있다 라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다양한 색이 있기에 각각의 장소에 색을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사실 그렇다. 차이나타운에 갔을 때에는 (나는 난생처음 가본 곳이었다.) 중앙의 돌계단에서 봤을 때 왼쪽에는 일본식의 건물들, 오른쪽에는 중국식의 건물들이 있었다. 인천은 개발이 진행되는 곳과 보존이 진행되는 곳, 한국양식, 일본양식, 중국양식 등 다양한 정체성들이 존재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러한 곳에서 자란 영향을 받은 탓에 내 성격이 애매모호하고 우유부단한가라는 어이없는 생각도 잠깐 했다. 어쨌든 바다와 접해 있고 중국과 일본이 가까이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당연한 사실이 있었음에도 이 상황을 지금에서야 직접 보게 된 나로선 새삼 신기하고 인천이란 이렇게 포용성이 좋은 곳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함께 워킹을 했던 우리 모두는 마지막 종착지가 되었던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과 짬뽕 등을 먹고 헤어졌다. 집으로 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 내가 2009년에 인천을 보고 있다 라고 해서 보여지는 인천까지 마냥 2009년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왜냐하면 190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 자취를 남긴 곳에 또 다른 이방인의 건물이 들어서고 그것이 없어지면 그 위에 국가가 세운 건물이 들어서고... 같은 공간에 다양한 건물과 쓰임들이 누적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인천의 색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앞으로 인천은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게 될 것인가... 무척 궁금하기도 하고 그것이 인천에 사는 우리 젊은 세대의 몫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쨌든 다양한 색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다양한 색의 사람들이 함께 워킹을 했다. 정말 멋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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